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9.11 테러/반응과 여파 (문단 편집) == 정치 == 9.11 테러의 여파로 미국은 '[[애국자법]]'을 통과시키며 '국가위기사태'라는 명목 하에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였고, [[연방]]정부의 관료주의의 벽으로 인해 정보 공유가 안 된 점이 사태를 막지 못한 원인이라 보고 [[국토안보부]]와 같은 최고 국가기관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로 [[민주주의]] 사회, 특히 미국 같이 [[자유]]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가에서 보기 드문 제약이 가해졌다. 또한 [[팔레스타인]]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테러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축제를 열어 환호했다고 한다. 이는 얼마 안 가 공포 분위기로 돌변하게 되는데 [[이스라엘]]의 [[아리엘 샤론]] 총리가 계획적으로 [[PLO]]를 도발해서 화해무드를 박살내고 언론이 잠잠한 틈을 타 팔레스타인에 폭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. 미국에게 한 방 먹이고자 했던 [[알카에다]]의 작전이 오히려 미국의 [[역린]]을 건드리는 바람에 팔레스타인의 [[무슬림]] 동족들이 그 대가로 학살의 참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.[* 다만 아랍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은 그냥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, 같은 아랍인이라는 동족의식 같은 게 존재하지는 않는다.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도 어떤 부족 출신이냐에 따라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는 동네가 중동인데, 외국은 말할 것도 없다.] 설상가상으로 아리엘 샤론은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무효라며 오슬로 협정을 무시하고 PLO의 수장 [[야세르 아라파트]]의 집무실을 공격해 파괴하고 아라파트가 촛불에 의존하여 집무를 보게 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연출함으로써 분노한 팔레스타인 대중들이 이스라엘과의 대화의 길을 선택하는 대신 [[하마스]] 류의 극렬 무장 투쟁단체를 지지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되어 [[가자지구]]에서 또 다시 피를 흘리는 유혈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. 한편 2004년 10월, [[오사마 빈 라덴]]은 인터넷을 통해 "왜 9.11 테러를 계획하게 되었는가?"를 비로소 밝혔다. 1982년 6월 [[이스라엘]] 공군의 [[레바논 내전|무자비한 폭격]]으로 붕괴되는 [[베이루트]]의 고층 빌딩과 무고한 희생자들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이를 갈았던 [[오사마 빈 라덴]]은 이스라엘의 후원자인 미국의 건물을 공격해서 [[눈에는 눈 이에는 이|그대로]] [[복수|되갚아줄 것]]을 결심했다고 한다. [[https://www.aljazeera.com/archive/2004/11/200849163336457223.html|번역본]] 그리고 20년 뒤 빈 라덴과 휘하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미국인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안겨주었고 그것이 [[아프가니스탄]]과 [[이라크]]에서 다시 피와 증오의 악순환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. 또 이 사건은 미국 내와 전 세계의 모든 [[무슬림]]들을 [[잠재적 가해자|잠재적 테러리스트]]로 인식되게 만들었고 사건 이후 미국에서만 1년 동안 400여 명의 무슬림들이 [[증오범죄]]를 당했다고 한다. [[알카에다]]의 테러 때문에 애꿎은 무슬림들까지 피해를 본 셈이다. 비슷한 맥락으로 9.11 테러 이후 '테러리스트'라는 아랍인들을 칭하는 [[인종차별]]적 [[세계인 비하명칭|표현]]이 하나 더 생겼다. 이때부터 그 유명한 [[슬로건]]인 '''[[테러와의 전쟁]]'''이 시작되었다.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테러와의 전쟁은 [[승자없는 싸움|끝이 없는 수렁]]으로 빠지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